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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형근을 그리워하다니 / 조홍준(울산대 의대 교수)

국민의 힘으로 이해집단의 반대를
뚫고 제도를 바꾼 의료보험 통합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운동이다
새 건보 이사장은 이를 쪼개려 한다

»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가정의학

1989년 3월9일 의료보험 통합과 소득과 재산에 따른 보험료의 누진적 부담을 골자로 하는 국민의료보험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했다. 다음날 한 일간지 1면에는 “통합의보 시행시 봉급생활자의 보험료 부담이 2.8배 증가한다”는 근거 없는 내용이 기사화되었고,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 기사는 이번에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김종대씨(당시 복지부 공보관)가 제공한 개인의견에 근거한 것이었다. 공무원이 개인의견을 언론에 제공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2000년 국민건강보험이 시작되기 11년 전에 우리는 진보적인 통합의료보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김종대씨는 김대중 정부 때 의료보험 통합 반대를 명분으로 기획실장을 그만둔 전력이 있다. 더구나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이사장에 임명된 직후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취임식에서도 현재 통합된 건강보험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의료보험 통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이를 소신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를 통합 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으로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이 쪼개기를 원하는 조직의 수장을 덥석 받는 김종대씨를 보고 분노보다 연민이 앞선다. 상식이 있는 정부에서 이런 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김종대씨의 이사장 임명이 건강보험공단 쪼개기나 의료민영화 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 김종대씨를 비롯한 조합주의자들은 의료민영화의 적극적인 옹호자들이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의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을 바로 앞둔 상황에서 의료보험 통합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왔고, 위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인사를 건강보험공단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을 우연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정부 들어 우연적인 사건이 결국에는 서로 연결된 필연임을 보아오지 않았는가?

나는 1988년 조합주의 방식으로 의료보험이 도입된 농촌 현장에서 의료보험증을 불태우는 농민의 분노를 보고 의료보험 통합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2년에 걸친 민중과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2000년 건강보험의 통합을 달성했다. 의료보험 통합은 단순한 보험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국민의 힘으로 이해집단의 반대를 뚫고 스스로 제도를 바꾼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운동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통합된 건강보험체계 때문이다. 조합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통합 이후 공단 재정에서 차지하는 관리운영비의 비중은 크게 감소하였고, 조합 간 보험료 부담의 공평성도 크게 개선되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 민주정부 10년에 걸쳐,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장성도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왔다.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간 보험료 부과체계를 단일화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지 건강보험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이제 우리는 낮은 경제성장과 고령화시대를 맞아 건강보험을 재설계해야 할 중대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건강보험을 쪼개거나 의료를 시장에 맡기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건강보험을 건드리지 말라. 건강보험을 파괴하는 것은 쉽지만 이를 다시 살려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 건강보험제도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제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김종대씨는 자신의 ‘소신’에 반하는 공단 이사장직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종대씨에 대한 이사장 임명을 취소하라. 내가 민주주의를 탄압한 정형근 전 이사장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가정의학

작성일 : 2011-12-06 (화)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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